"여러 회사를 다녔습니다. 늘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마지막이길 바랐습니다. 그 말은 내 모든 것을 내주고 서로 win-win 하길 원했습니다. 충성을 다하고 좋은 성과로 이바지하고 회사는 회사대로 성장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길 바랐습니다. 모두가 그렇겠지요?
하지만, 가방끈이 튼튼하지 않고 문과출신이였던 저는 처음부터 좋은 환경과 상황의 회사를 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중소에서 시작하여 중견을 거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직무의 일과 사람을 만나게 되었던 게 큰 힘이 되기도 하고 현재 번아웃/무기력을 심하게 앓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추측도 해봅니다.
제 직장생황 20년을 되돌아보니 이제야 보이는 몇몇 중요인물들에 대해 뒷담화를 해보고자 합니다.
애정하거나 증오하는 IT회사 최고 진상들 Best 6
[증오] 1. 저돌적이고 미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
"거의 첫 회사였고, 나중에 퇴사후 재입사까지 해서 말 그대로 열정페이까지 치렀던 회사에서 만난 사장님입니다. IT 버블시기에 급 성장한 중소기업으로써, 국가간 유통 중개업까지 하던 IT에이전시의 사장님입니다. 추진력과 전략적인 논리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는 능력은 20년 제 경험에서 최고 일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가 PT할때 그의 어떤 포인트를 따라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쁜 말로 하면 뻥카가 심한 것이고 좋은 말로 하면 사업가이자 전략가였습니다. 당시 그가 40대 초중반이었으니 이른 나이에 성공을 하고 술영업을 제대로 못 배워 모든 것을 술로 풀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당시 충성심, 사명감, 애사심 등으로 무장된 저는 급여가 2년넘게 체불되던 상황에서도 '이 회사는 잘 될 것이고 나는 내 능력을 투자하는 것이라 잠깐은 어려워도 지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급여의 일부를 받을 기회가 생기면 팀원들부터 챙겨줬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을 가장 후회합니다. 아이가 막 태어났고, 30대 초중반에 제대로 포트폴리오를 쌓았어야 했는데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퇴사한 후 사장님까지 포함하여 10명 남짓 술을 한잔 한날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생각나며 콧방귀를 껴봅니다. '지금 다니는 곳에서 성실히 일해라,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될텐데 오점 남기지 말고 일해라'
[애정] 2. 묵묵히 너무 많은 일을하는 착한 형
"위의 1번 회사에서 만난 직속 상급자 십니다. ^^. 능력도 중간 이상이었고, 성실함과 충성심, 애사심등은 훨씬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아직도 1년에 한두 번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는 좋은 형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끼리도 자주 만나 놀러도 갔었습니다. 그만큼 인성도 좋으신 분입니다.
기획자라서 그런지, 과제의 분석력과 해결방안의 계획을 잘 수립했습니다. 그래서 늘 명쾌했고 유관팀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업무면 업무, 소통이면 소통, 그리고 이른 진급에도 리더쉽을 타고나서 조직관리를 잘 했습니다. 그만큼 섬세하고 디테일한 사람이였습니다. 저의 덤벙거림이나 무모함을 잘 달래서 좋은 성과로 이끄셨던 모습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아직도 기획자 하면 그분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그러나 어필을 잘 못합니다. 고객에게는 파트너에게는 적절히 의사소통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정작 필요한 소통은 소심해서 그러신 지 피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당시 어린 저는 불만을 갖았지만, 지금은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체불당하고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
[증오] 3. 교수타이틀을 싫어하게 만든 사람
"체불로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지인의 소개로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사의 IT관계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업무환경과 문화, 프로세스, 규정, 기준들을 보며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왕복 3시간 정도의 먼 거리를 출퇴근했습니다. 어쩌면 이 시기의 경력과 경험으로 아직도 먹고사는 것 같습니다.
그룹사의 IT관계사 대표는 보통 2년 계약에 중임이 가능했고 IT특성상 외부에서 초청된 적이 많았습니다. 유수의 IT기업의 임원이었거나, 경쟁사였거나, 아니면 교수 같은....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만난 한 IT관계사 대표님의 이야기입니다. 왜 저분은 저리 어렵게 우리에게 말할까?, 왜 회장님과 의견차이가 있을까? 왜 더 디테일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의 제게는 많았습니다. 리더급 이상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1) 이직한 회사에 맞춰 일하는 사람, 2) 본인의 방식대로 끌고 가려는 사람 /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러기에 2년은 너무 짧습니다. 회사가 경력직을 뽑는 이유는... 빨리 적응해서 개인의 역량으로 회사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입니다.
즉, 어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2년 임기도 채우고 중임도 할 수 있고, 아래에 딸린 식구들 챙길 수 있습니다. 근데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데, 이론적으로/ 일반적으로 이렇습니다. 하면 대부분 경영자분들은 싫어합니다. 설교 들으려고 뽑은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수의 외국계 대기업에서 오래 다니면서 임원까지 하고 서울 어디에 있는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본인을 교수라 칭하던 분. 결국 아무것도 주도하지 못했고, 아무도 본인 편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래된 중견/ 대기업의 경영진에게 고여 있다고 하기엔 본인의 떨어지는 실무능력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당신을 믿고 당시 새로운 도전을 했던 우리는 아직도 너무 화가 납니다. 그 선택을 한 우리 자신에게..."
[애정] 4. 실력은 최고지만 술독에 빠진 헛 똑똑이
"최고의 개발자의 역량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저는 문서정리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부분에서 뛰어난 사람을 두 명 만나봤고 제가 너무 존경하며 모두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본인이 어떻게 만들 것이고, 만들었다는 정리뿐 아니라 개발자로서 분석/설계할 내용을 문서로 정의하는 것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많은 프로젝트와 여러 개발자를 경험했고 거기서 늘 이슈가 발생하는 것은 소통과 문서작성 여부에 달렸다는 것을 일찍 히 경험하시고 결론 내셨습니다. 그래서 업무 소통은 협업 도구를 통해 잘 사용하셨지만 너무 스티브잡스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내가 개발하면 팔린다. 회장이 날 선택하는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역량이 뛰어나다 보니 자존감이 높았지만, 조직관리, 리더십, 구성원과의 소통 부분에서 늘 불안한 부분이 많고 사고를 종종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PM으로 입사한 저는 한 달 만에 그분을 커버하며 함께 일할 팀장으로 승격되었고, 같이 사업기획, 제품 기획을 하며 신뢰를 높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아직도 저에게 찬사를 보내시며 주위사람에게 저를 홍보하십니다. 그분의 기분과 상태를 잘 컨트롤해야 했던 저는 주 5일을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5일 중 3일은 노래방을 갔습니다. 노래는 안 부르고 취한 김에 조용히 둘이 앉아 회의를 합니다. 2~3시간씩.... 이렇게 제품 관리하면 안 된다. 저렇게 사업방향을 잡아보자, 둘의 대화는 늘 진취적이었고 개선점을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와 대화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얼마 전 그가 금연과 절주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년째 심각한 지방간에 시달리는 저는 큰 배신감을 받았지만. 멀리서도 그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
[증오] 5. 소심하고 항상 숨기는 가스라이터
"이 사람을 6년 겪고 저는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욕심이 많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부도덕한 사람들이 차라리 낫다. 소위 나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보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갑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설득하거나 독려합니다. 그래서 성과도 내고 이슈도 발생시킵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색깔이 없어서 같이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원해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소심함에서 나오는 색깔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목표하지 않으며, 대표 아래로 3번째 직함을 갖았음에도 과제의 주도권을 갖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대표를 잘 알고 존경하지만 본인은 나설 수 없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바보라 부르며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온갖 오물만 갖다 버립니다. 그럼 또 묵묵히 합니다. 애사심이 강하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죠. 혼자 묵묵하면 좋은데 하위에 있는 많은 팀/그룹/조직을 다 이용해서 합니다. 눈치 빠른 팀장들이나 부서장은 그걸 역이용합니다. (나도 잘 몰라요~ 바빠서요... 하면서)
그럼 결국 저 같은 직책도 없으면서 성격은 급해서 빨리 결과물을 내놓고, 능력은 모르겠지만 시키면 다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오물을 내려줍니다. (회사를 위해서 하는 게 맞지 않냐/ 저 팀장은 원래 저런 사람이잖아 네가 해야지 누가해? 이해해 라면서) 지나고 보니 변함이 없습니다. 늘 뭐 하는 조직인지... 저 사람 밑에 있는 애들이 다 그렇지 모 라는 평가만 받습니다.
그분의 요청/지시로 온갖 허울뿐인 좋은 말로 포장한 기획서와 보고서를 소설 쓰듯이 만들고 결국 그분만 전문가로 보이게 하고, 또 누군가 할 일을 대신해 욕을 먹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산출물을 모자란 다른 부서장의 성과로 둔갑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급누락을 당하고 연봉동결이 되었습니다. 사과 한마디 없고 어떠한 설득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정한 것이고 본인은 모른다였습니다. 즉, 옆에 두고 본인 착한척하고 아는척할 때만 아무것이나 써는 칼로 취급받는 제 모습이 싫어 최근에 이직했습니다.
[애정] 6. 사람들이 꺼리는 너무 일찍 태어난 궤변가
"이분과 함께 회사 다닌 것은 6개월 정도이고, 알고 지낸 것은 13년, 1년에 한두 번 만나도 너무 반갑고 못 만나도 시간의 갭이 안 껴지는 분입니다. 개발자이지만 PM을 기가 막히게 수행하며, 기획의 이론은 빠삭하게 공부하신 분입니다. 엄청난 논리력, 기억력을 갖추고 있고 아직도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단. 술 마실 때 규칙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보면 안 됩니다. ^^; (본인을 안 쳐다볼 거면 집에 가라고 합니다.)
업무 할 때 그분을 보자면 대단하십니다. 대화 속에 온갖 감정을 다 담아서 공격적으로 말하시는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듣다 보면 상대방의 무능력함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는 능력도 갖고 계십니다. 저랑 업무적으로 엮일 일은 없었지만, 그 논리력과 설계?로 인해 참 주변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피했습니다.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13년 전 사회생활 5년 정도 했을까요? 그 시절에 제가 입사한 지 2주 정도 되고 그분이 프로젝트에서 복귀하여 저랑 4일째 만났을 때입니다. 갑자기 컨설팅 업무를 해야 돼서 끙끙대고 있을 때 옆에서 뭐가 문제냐며 가볍게 몇 마디 나누시고 그날 저녁에 치맥 하시면서 한 말씀을 아직도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넌 니 능력에 비해 많은 욕심을 갖고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일만 봐라'
저보다 10살 많으신데 몇 세대 앞서서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생각이 고여있지 않고 늘 깨어있고 탐구하십니다. 그래서 만나면 늘 새롭습니다. 말투는 꼰대인데 생각은 꼰대가 아닙니다. 늘 제말을 경청해 주시고 제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며, 칭찬을 해주시는 분이라 마음이 고단할 때 만나면 큰 힘이 되는 분입니다. "
증오하는 사람들 중에는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에 올리기 싫어서 IT회사 최고 진상들 Best 6명만 뽑아 보았습니다.
이렇게 추억하는 이유는 제가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자기객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꼬였는지부터 찾아들어가다 보니 옛날생각이 많아지는 하루가 되었습니다.